한반도 통일, 독일 통일과 무엇이 다른가

⓺ 한반도 통일: ‘고려 연방제’로 이득 볼 사람들

‘고려 연방제’? 그 후 ‘베트남’일까 ‘홍콩’일까

‘연방제’로 통일 후 중산층·기업인·군인·공무원·교사·기자들 ‘장기 적출’ 될 수도

전경웅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8.01 0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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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통일·외교부장입니다. 통일부,외교부,북한,국제 분야를 담당합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국익보호'입니다. 국익보호와 관련된 이슈는 국제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국내의 어두운 세력들이 더 큰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알려주는 정보가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지금까지 독일과 예멘의 분단과 통일 노력, 통일 전후의 과정을 살펴봤다. 모두 한반도 통일에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한반도 통일, 생각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분단 기간 72년이 ‘불과’ 일수도, ‘기나 긴’일수도 있지만, 그 동안 한 쪽은 ‘신정일치’ 수준의 독재 체제를 3대째 세습해 왔고, 다른 한 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지향하면서도 25년째 ‘포퓰리즘 정치’와 언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남북한 양측의 통일 주체들이 이런 탓에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어떤 형태의 통일이 가능성이 있는가’를 살필 수밖에 없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거론되는 한반도 통일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다. 북한 주도의 ‘고려연방제’, 북한 내부 분열로 인한 체제 붕괴와 한국에로 흡수 통일, 외부 압력에 의한 북한 체제 분열과 외부 세력의 진입이다.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려 연방제’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제안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나왔다. 1948년 5월 김용중 씨가 주장한 ‘한반도 영세중립국화를 통한 통일 방안’이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여러 계층에서 설득력을 얻기도 했지만, 당시는 냉전이 점차 고조되던 시기여서 남북한 정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일성은 ‘통일’을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1960년 8월 15일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김일성은 ‘해방 15주년 경축식’ 축사에서 “남조선과 조선의 현재 통치 방식은 그대로 두고, ‘최고민족위원회’를 구성해 통일의 과도기를 겪고, 이후에 국가 연합 방식으로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1973년 6월 23일에는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다시 내놨다. 통일 과도기로서 ‘고려연방공화국’을 만들고, 남북은 각자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민족 회의’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제도·체제 통일을 이뤄나가자는 내용이었다. 1960년 8월 15일에 내놓은 것과 달라진 게 없었다.

김일성은 포기하지 않고 1980년 10월 10일, 다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제안했다. 통일 한국의 국호는 ‘고려’로 하고 남북한은 현재의 체제에서 ‘내치(內治)’를 하는, 일종의 지역 자치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남북한은 연방공화국 내에서 각자 동등한 자격과 권한을 갖는다는 조건도 붙었다.

김일성이 1980년에 제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제안에서 이전보다 구체화된 것은 바로 ‘비동맹 중립화’를 연방의 외교노선으로 취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외국군의 주둔 및 기지제공 금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지대 건설 등이 포함됐다.

통치 제도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국회는 남북이 같은 수의 의원과 적정한 수의 해외동포 의원으로 구성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만들어 입법부로 하고, ‘연방상설위원회’를 창설해 통일 정부를 다스리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연방상설위원회’는 ‘민족연합군’ 통수권과 외교권을 가지며, 위원회에는 대통령 대신 공동의장을 둬 번갈아 가면서 ‘국가원수’를 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일성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1991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했다. 입법부나 군 통수권, 한미동맹 문제에 대한 남한의 반발을 피해보고자 머리를 쓴 것이다. 김일성은 ‘느슨한 연방제’를 통해 남북 자치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 또한 거절당한다.

한국이 ‘고려 연방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한국이 김일성의 ‘고려 연방제’를 거절한 이유는 많지만, 일단 한반도와 주변국 간의 관계, 남북한 간의 격차, 표리부동한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성 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일성이 처음 ‘고려 연방제’를 제안하기 한 해 전인 1959년부터 북한의 대남도발은 208건에 달했다. 북한의 대남도발은 1964년 1,294건, 1971년 2,479건으로 갈수록 증가했다.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124군부대 청와대 습격기도 사건이 1968년 1월 21일 발생했고, 120명이나 되는 무장공비를 남파했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일어났다. 김일성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제안한 1980년에는 대남도발이 8,327건으로 역대 최다였다.


김일성은 이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한국을 향해 “남북조선이 연방을 이뤄,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보자”고 유혹했지만 뒤에서는 한국 사회를 망가뜨리려 부단히 노력했다. 이후 집권한 김정일, 김정은 또한 대남 무력도발을 계속 해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 연방제’에 들어 있는 ‘남북한 자치제’와 ‘남북 연방의회 설립’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우선 입법부 구성이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 원리는 1인 1표제로, 입법의원은 인구 비례에 따라 선출해야 하는데, 당시 인구 2,000만의 북한과 4,000만의 남한이 동일한 수의 입법의원을 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남북한이 인구 비례대로 선거를 한다고 해도 위험하다. 북한은 투표율 100%에 지지율 99% 이상이다. 모두 조선노동당을 지지한다. 반면 한국은 총선이나 대선 때 투표율이 50~60% 선에 불과한데다 지지하는 정당도 2~4개로 나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정부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연방회의’를 만들게 되면 북한 유권자 수에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과의 무조건 통일을 원하는 유권자 수가 더해져 조선 노동당은 한반도의 집권당이 된다. 연방 대통령 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정당이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다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지대’ 건설 문제다. 말은 그럴싸해 보인다. ‘고려 연방제’에 들어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지대’ 건설은 ‘자주·민족·통일’ 노선을 표방하고 있어, 한미방위조약 폐지와 함께 주한미군의 철거와 전력들의 완전한 철수를 요구한다. ‘평화지대’ 또한 남북한 간의 불가침 조약보다는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美-北평화협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북 간의 합의를 휴지보다 못하게 보는 북한이 남침 또는 남한 전역에서 사보타지와 테러를 일으켜도 남한 정부는 어떻게 막기가 어렵다. 만약 한국 정부가 2017년에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거의 완료한 상태에서 한반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고려 연방제’를 할 경우 연방 수도 또한 평양이나 개성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스스로 고구려와 고려를 이어받은 나라라고 주장하기에 ‘고려 연방제’를 통해 역사 속의 수도로 천도하자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1990년 남예멘과 북예멘이 통일을 한 뒤 경제 수도는 남예멘의 아덴, 정치 수도는 북예멘의 사나에 둔 것과 비슷하다. 경제력은 우월했지만 군사력에서 뒤쳐져 있던 남예멘은 북예멘에 무력흡수통일을 당한다.

한국이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려 연방제’를 실시한 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북한 노동당이 집권한 뒤에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바로 ‘남조선 정화작업’이 시작된다.

적화 통일 때 ‘2,000만 명 처형’? ‘반동분자 장기적출’로 돈벌 듯

인터넷에서는 한 네티즌이 탈북자들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적화 통일 시 한국 내 상황’이라는 글이 나돈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일이 생전에 “한반도 통일 혁명이 완수되면 남조선 인구 5,000만 명 가운데 1,000만 명이 해외로 갈 것이고, 2,000만 명을 숙청한 뒤에 남북조선 2,000만 명씩 통일하면 된다”는 말을 했다는 주장과 함께 1975년 4월 베트남이 패망한 뒤에 일어난 ‘혁명화’를 편집해 구성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만, 최근 상황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홍콩과 베트남 방식을 융합해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 연방제’가 완성되면, 우선 기존의 외교조약이나 협정을 전면 재검토해 한국을 서방 진영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이어 한국 대기업들의 해외 사업과 자산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도록 강요한다.

또한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북한재건사업’과 ‘보편적 복지’에 사용한다며 세금 명목으로 자산을 몰수한다. 자금력이 풍부해진 ‘고려 연방국’은 노동당 간부와 당원에게 돈을 뿌려 이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파고 들 수 있도록 돕는다. 노동당을 지지하거나 돕는 시민사회단체에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다.

북한은 이렇게 조선 노동당과 지지 세력을 키운 뒤 ‘1단계 정화 사업’을 시작한다. 순서는 ‘국가보안법’과 ‘언론 관련 법’, ‘형법’ 개정을 통해 한국 국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은 뒤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숙청하는 것이다. 그 순서는 언론-작가-시민사회단체-교사와 공무원이 될 것이다. 경찰·군 수뇌부나 해외 유학 생활을 한 사람도 사정은 같다.


이렇게 수구반동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베트남처럼 공개적으로 인민재판을 당하거나 노동교화소 등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홍콩처럼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될 것이다. 북한 수뇌부도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해체’해서 팔면 상당한 ‘돈벌이’가 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장기적출 사업’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은 뼈조각 몇 개 이외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제야 주변 지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끼고 해외로 망명하려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에 의해 출국금지 대상에 올라 있을 테니까.

60만 명이 넘는 군인, 10만 명에 달하는 경찰의 경우 모두 숙청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수뇌부와 ‘골수 반동’인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른 ‘떡밥’을 던져줄 것이다. 반일과 반미, 반중 사상을 고취시켜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 동해안,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극도로 경색되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제재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통일 한국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부산, 울산, 포항, 동해, 제주 등에 영구주둔 기지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이성적인 면을 제거한 뒤에는 ‘2단계 정화 작업’을 실시할 것이다. 노동당을 지지하는 ‘자칭 시민단체’는 공공연히 ‘인민재판’을 벌여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갈 것이다. 이때 경찰에 신고를 해도 법원은 이미 적화된 형법과 국가보안법 등으로 이들에게 ‘무혐의’를 선고할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 ‘사회 정의에 따라 단죄’했다고 주장하기에 국제사회도 개입하지 못한다.

‘고려 연방국’이 된 뒤 한국의 모든 사람은 강제적으로 직장에 다니게 되지만 교육 수준이나 성과,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같은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임금은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통일 이후 떨어질 대로 떨어진 원화 가치 때문에 사실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이후 한국인들은 해외여행, 휴가, 결혼식, 사치품 구입, 유흥업소 출입, 스포츠 관람과 같은 생활은 두 번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정부 지시에 따라 강제로 폐업하거나 자산을 당에 넘겨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모나 친척이 노동당과 지지 세력을 비난하면 당국에 신고하기 시작할 것이다.

반면 북한 특권층은 한국 대기업을 사실상 소유하며, 한국 국민들로부터 빼앗은 돈으로 호가호위할 것이다. 노동당원과 이들에 빌붙은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공산당원과 그 가족들처럼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명품 사재기를 하고, 나라를 넘긴 한국인을 비웃으며 살 것이다.

北에 협조하면 ‘재벌’이라도 안 죽는다? 나치 때 ‘로스차일드’를 보라

현재 국내에서 북한의 체제를 찬양하고, 그들의 주장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고려 연방국’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 노동당이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을 소유한 뒤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해 합당한 대가를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한국에 불리한 주장과 행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전례도 있다. 나치 정권 시절 그들에게 협조했던 유대계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19세기 이후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 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히틀러와 나치당을 믿고 이들을 후원했다.

1933년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선 뒤 거대군수업체 ‘I.G 파벤’의 대주주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서로 공생관계처럼 보였다. 나치 정권은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면책특권’ 수준의 권한을 주면서 우대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1938년 3월 18일 나치 정권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병합한 뒤 로스차일드 가문을 모두 붙잡아 강제수용소로 보낸 것이다. 이로 인해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 가운데 30% 이상이 가스실에서 사망하고, 재산 또한 절반 가까이 빼앗겼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독일 나치보다 더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 연방공화국’이 된 이후에도 그들의 성향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이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면 개인적 이익에 따라 부화뇌동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음에도.

‘⓻한반도 통일: 北체제 내부 붕괴와 외부 진압’

    • 전경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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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통일·외교부장입니다. 통일부,외교부,북한,국제 분야를 담당합니다.

      저의 주된 관심은 '국익보호'입니다. 국익보호와 관련된 이슈는 국제관계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국내의 어두운 세력들이 더 큰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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